숩닝 komet 1
Komet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갔으니 24시간 내로 안 나오면 잡으러 가야한다.
수빈은 운전석에 앉아 빈 스프라이트 캔에 담배를 비볐다. 창밖으로는 어슴푸레한 푸른색이 물에 풀리듯 번져가고 있었다. 새벽 녘의 강가에선 슬슬 아침 안개가 올라오고 있었는데, 갈대밭 부근에 차를 대어 놓으니 차체 꼭대기까지 자란 갈대는 차를 있는듯 없는듯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림자조차 밑바닥에 고여있는 시간이다.
수빈은 차문을 박차고 나와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시트를 한계까지 제꼈어도 허리에는 무리가 갔다. 워커에 진흙과 죽은 대가 엉겨붙었다. 끔찍하게도 수빈은 12개월 할부 쌔삥에 흔적을 남길 때가 오고야 말았다. 핸드폰에는 여전히 연락이 없고 홀드를 누르면 센터장이 남긴 문자만 수두룩했다. 시키는 일 안 하는 부하직원이 무릇 그렇듯 수빈은 답을 하지 않았다. 화가 나면 멋대로 하는 버릇 고쳐. 센터장도 크게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충고였다. 언제 홍수가 밀어닥칠지 모르니 알아서 처신 잘해서 제 선까지 올라오는 일은 방지하라는 뜻이다.
카이 카말 휴닝은 사찰에 갔다.
미국에서 온 센티널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일을 한 곳이다. 이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협력도 아니다. 그 사찰의 주지스님이 웃기게도 대통령이랑 친분이 있었다. 대통령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주지스님은 호국을 위한 법회를 열었다. 그냥 놀러왔던 카이와 대통령과의 담화를 기대했던 미국대사는 어영부영 대통령을 따라 법회에 참석했고 남은 기억이라고는 절밥은 맛있고 사찰은 조용하다가 다였다. 카이는 센티널이었고 그래서 사찰은 카이 카말 휴닝의 공식 업무로 찍혔다. 미국은 센티널의 자유 보장 아래 협회가 있고 협회는 난리가 났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다는 이유다. 카이 카말 휴닝은 징계 차원의 자원봉사라는 미명 아래 열심히 굴렀다. 근데 그 사찰에 또 갔다.
수빈은 졸지에 카이의 GPS가 되어 카이의 일정을 한국 센티널 기관에 보고 했다. 이것은 핵무기처럼 유효기간은 없으되 핵무기처럼 강력한 센티널들의 업보다. 그리고 수빈은 업보를 수집하러 다니는 공무원이다. 수빈은 평범한 4년제를 나왔고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었다. 센티널 기관은 사람들이 말하는 꿈의 직장은 아니었다.
센티널은 필연적으로 가이드를 사랑하고야 만다. 생의 유일한 동앗줄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버티는 거다. 모든 감정을 사랑으로 퉁쳐버리는 일들은 센티널들 사이에서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기관은 제어가 필요하다 판단한 센티널에게 관사를 제공하고 있고, 관사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경찰이 들이닥친다. 센티널은 강하고 가이드는 약하다. 센티널은 사랑에 빠지고 가이드는 사랑에 관해 자유롭다. 그러니까 이걸 데이트 폭력이라 불러야 할지 삶에 대한 집착이라 불러야 할지 수빈은 명확히 정하지 않았다. 가이드가 떠난 센티널은 자살한다. 평범한 인간들은 꿈도 안 꾸는 힘과 사랑과 정신머리다. 정신과 상담은 센티널의 주요일과지만 그 상담이 도움이 되는지는 신만 알 일이다. 수빈은 사찰로 오기 전에도 경찰을 상대하고 유치장 일주일 숙박으로 딜 하고 왔다. 자다 일어난 부스스한 머리와 수면 만성부족에서 오는 뾰족한 심성은 이제 수빈의 일부다. 착하고 점잖다는 지인들의 한 줄 평은 입사와 동시에 증발했다. 수빈은 한숨과 섞여나오는 입김 너머로 산 중턱의 사찰을 쳐다봤다. 저기까지 올라가야 한단 말이지. 수빈은 비실대며 걸음을 옮겼다. 주지스님이 대통령과 친해서 그냥 쳐들어갔다간 센터장한테 제대로 닦였다. 수빈은 품에 박카스 묶음을 들고 오름길을 밟았다.
수빈은 카이 카말 휴닝의 프로필을 이틀 전 받아보았다. 경찰 기록 전무. 치정 싸움 없음. 능력은 알려줄리가 없다. 누가 적국에 기밀 정보를 넘기겠는가. 몇장 안되는 종이를 팔락이던 수빈은 회의에서 손을 들고 물었다.
위해 점수는요?
위해 점수는 센티널을 보유 중인 국가는 제어의 가능성에 따라 높아지거나 낮아진다. 비보유 국가에서는 자기 나라에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에 대해 점수를 매기고 둘을 합산한다. 카이 카말 휴닝의 자국 위해 점수는 30점 전반에서 후반. 40점을 넘지 않는다. 깐깐징어 같은 미국에서는 30점 정도를 일반인과 생활 가능으로 판단하니 간당간당하다. 한국은 40점에서 50점 사이를 일반인과 생활가능으로 판단하니 말 다 했다. 그리고 한국이 평한 카이 카말 휴닝의 위해점수.
97점.
센터장은 회의장 상석에 앉아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서 굴러다니던 걸 주워온 모나미 볼펜을 딸깍 거리던 센터장은 수빈을 응시했다.
짬밥 늘리고 와. 다섯이면 너무 적지.
몇점 만점이었죠?
200점.
자국 센티널의 만점이 100점이고 타국 센티널은 200점 만점. 즉 수빈은 50점 짜리 감시하러 떠나는 길이다. 수빈은 입사 2년차. 위해점수가 150점을 웃도는 센티널을 감시하는 사수 및 선배들은 손뼉을 쳐줬다. 그정도면 야 코 푸는 것보다 쉬워. 그렇다. 센티널 기관의 일반인 공무원들은 국정원 보다는 공적이고 일반 기관치고는 굉장히 사적인 일을 하고 있다. 걸리면 꼬리 잘리고 감방 간다. 돈은 많이 준다. 수빈의 사수들은 감방 1~6개월은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이제 나도 감방 갈 차례인가, 하고 수빈은 감시 업무를 떠날 때마다 흐린눈을 했다. 감시자들은 국가에서 자리 보전 하나는 확실하게 해줬다. 자리를 1년이다 비웠다 와도 책상에는 포스트잇 하나 안 떼지고 고스란히 붙어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수빈이 어쩌다 이 미치광이들의 부서에 배정되었는가. 사회복지과 나와서였다.
사회복지과 나온게 감시자랑 무슨 상관이에요.
입사 1년이 되었을 때, 선배 감시자들처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수빈은 센터장에게 보고서를 올리며 물었다. 입사 10년차 쯤 되면 센터장이랑 멱살도 잡을 수 있다. 감시자들에 한 해서 센터는 더 없이 관대하다.
센티널들의 안녕과 자유를 위해.
진짜요?
가 표면적인 이유고. 정치 머리 없고 간은 작으며 쓸데 없이 의문 제기 안 할 거 같아서.
과연 수빈은 현대사회 직장인의 표본이었던 것이다. 법카로 긁은 영수증 하나하나 차곡차곡 카드 번호 나오게 뽑아 행정과에 제출 기한 맞춰서 내는 것까지도. 야근 수당 계산해서 엑셀로 보기 좋게 쫙 뽑아내서 올리는 것, 빠꾸 먹을까봐 다 건너뛰고 센터장한테 먼저 결제 받는 것도 선배들한테 배웠다. 공식적인 수사권도 없이 국가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민간인 사찰하는 직종이니 뽑아먹을 대로 뽑아먹어야 한다는 거다. 어느날 회사 잘 다닌다던 아들이 이른 아침 밥 먹는 시간에 '엄마 나 지금 감방이야.'라고 전하는 일을 '응 언제 나오니?' 정도로 축소시키려면 돈은 꼭 필요했다. 검사들과 쿵짝 맞춰 재판 없이 바로 불기소 구속 받고 단타로 들어갔다 나오는 건 다달이 있는 행사다. 선배 하나는 센티널이 눈치 까고 있는 거 같다던데 미리 부모님 전상서 쓰고 있다.
감시자들의 부서 복지 1과. 수빈은 절 문턱을 넘기 전에 마음을 경건하게 하기 위해 침을 뱉었다. 썩어가는 폐, 새벽에도 센티널과 가이드를 중재하기 위해 뛰쳐나가 모자란 잠, 허구언날 밖으로 뺑이쳐서 형사도 아닌데 하는 잠복근무. 집 마련하면 때려쳐야지. 수빈은 비질 하고 있는 스님에게 다가가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복지과에서 나왔습니다. 별일 없으신지요. 복지과는 복지과니 거짓말은 아니다. 예에, 스님 혹시 주지스님을 만나뵐수...?
"주지께서는 출타 중이십니다."
"아 안타깝습니다. 저희 부서에서 단체 워크숍을 템플스테이로 할 계획이라 절들을 사전답사 하고 있는데... ."
" 그렇습니까?"
보라 스님도 요즘 아이폰을 쓴다. 수빈은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고 스님에게 물었다.
"혹시 템플스테이하는 숙박 시설을 볼 수 있겠습니까?"
뒷처리는 센터장이 알아서 하겠지. 그러라고 있는 지위 아니던가?
스님의 뒤를 쫓아, 수빈은 카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선당으로 향했다. 낮은 관목이 열을 이뤄 길가에 누웠고, 이르게 핀 매화 나무는 간간히 꽃이 났다. 고르게 펼쳐진 비포장 보도를 걸어 돌담 넘어를 훔쳐보니 새로 지은 기와와 깔끔하게 정돈된 기왓집이 보였다. 대청마루에 앉아 쪼그린 정수리가 흔들렸다. 색소가 옅은 곱슬머리. 회색 맨투맨. 수빈의 감이 말했다. 저놈이구나.
"안녕하십니까, 시주님. 간밤 평안하셨는가요?"
스님은 골무 같은 모자를 쓰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미국인이라던 카이 카말 휴닝은 스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하며 네이티브 한국어를 구사했다. 부모 중 누가 한국인이었더라? 수빈은 스님 뒤에서 조용히 인사 하고 카이가 앉은 건넛방을 구경했다. 난방은 보일러로 하며 각 방마다 화장실이 있고 장지문은 한지가 맞으나 밤을 보내는 데 불편함이 없다는 건 수빈이 알바 아니었다. 수빈은 방에 있는 자개 장롱과 옆에 각맞춰 접힌 솜이불을 보며 카이에게 귀를 기울였다. 미성이 섞인 허밍소리. 보헤미안 랩소디. 도대체가.
휴닝은 팔랑팔랑 밥 먹으러 사라졌고, 수빈의 뒤에 선 스님은 밥은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암자에서 먹는다고 했다. 조금 더 볼 수 있을까요? 수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거리낄 것 없고 그저 해맑아 관련자의 불편함을 낮추는 웃음. 감시자에겐 필수다.
수빈은 암자를 향해 오르는 돌계단을 밟았다. 지정 가이드 없음. 공식적 업무는 추수감사절 식료품 봉사활동 외 없음.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인간인데 없는게 많고 있는 건 얼굴 뿐인지. 너도밤나무와 잎 다 떨어진 단풍나무 사이에서 수빈은 평상에 앉아 바른 자세로 밥알 씹고 있는 카이를 구경했다. 바지가 토끼가 그려진 극세사 잠옷이다. 정말 놀러온 폼 제대로 난다. 수빈은 스님의 권유로 카이와 같은 평상에 앉아 간단한 다과를 먹을 수 있었다. 수정과가 담긴 다기를 홀짝이며 수빈은 가격은 얼만지, 며칠을 묵을 수 있으며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스님은 착실히 대답했고 수빈은 착실히 받아 넘겼다. 미사여구 욱여넣으면 보고서 한 장은 나온다.
퇴근각 잡힌 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경 잘했습니다, 하고 박카스를 건냈다. 이것은 소소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저희 부장님이 예의를 중시하셔서. 수빈은 암자를 내려가는 길로 향했다.
수빈은 몰랐다. 수빈은 이 길로 12개월 할부 자차와 함께 퀵으로 감방으로 배송될지. 복역 2개월. 할부는 자동으로 빠져 나가니 통장에 돈 쌓아두고 법카로 밥사먹길 잘했지. 수빈이 겸허히 상황을 받아들였다. 여태 감시한 센티널만 다섯인데 어째 신고 안 당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까지 요행이었지, 아무렴. 선배들은 복역 직전 수빈을 토닥이며 밥 잘 먹고, 짜지말고, 부모님한테 편지는 꼭 하라고 했다. 하지만 수빈의 부모님은 수빈이 빵 들어간 걸 몰랐다.
그리고 수빈이 감방에서 나왔을 때 카이 카말 휴닝 (20/센티널, 잘생김)의 위해점수는 168점이 되어 있었다.